2025년 상반기, 한국 영화계는 단순한 오락이 아닌 깊은 울림을 주는 영화 한 편을 선보였습니다.
바로 이병헌, 유아인 주연의 실화 영화〈승부〉입니다. 바둑이라는 다소 정적인 소재를 중심에 놓고도, 이 영화는 관객의 감정을 끌어당기는 놀라운 흡입력을 보여주었죠.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한동안 조용히 앉아 제 인생의 방향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누군가를 이기고 지는 문제를 넘어,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올바른가, 무엇을 위해 승부를 벌이는 가를 묻는 영화였기 때문입니다.
이병헌의 '조훈현', 눈빛 하나로 말을 대신하다
이병헌 배우는 한국 바둑계의 살아있는 전설, 조훈현 9단을 연기했습니다. 조훈현은 한국 최초의 바둑 세계 챔피언이자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낸 인물인데요, 이병헌은 특유의 묵직한 내면 연기로 스승의 복잡한 감정과 갈등을 탁월하게 표현해 냅니다.
이 영화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조훈현이 제자 이창호를 바라보는 시선이었습니다. 자부심, 질투, 애정, 책임감… 그 복합적인 감정이 말이 아닌 눈빛과 숨소리로 표현되었다는 점에서, 이병헌 배우의 연기 내공이 다시금 빛났습니다.
유아인의 이창호, 조용하지만 강한 존재감
유아인은 이창호 9단이라는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한 캐릭터를 연기했는데, 기존의 유아인이 가지고 있던 강렬한 이미지와는 달리, 조용하고 내성적인 인물을 섬세하게 표현했습니다. 그의 연기는 단순히 ‘연기 잘하는 배우’라는 평가를 넘어, 스스로 감정을 절제하면서도 완벽을 추구하는 젊은 천재의 내면을 깊이 있게 드러냅니다.
스승과 제자가 마주 앉아 바둑을 두는 장면은 그 자체로 전율이 느껴졌습니다. 그 장면은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두 사람이 삶의 철학을 바둑판 위에서 부딪히는 장면이었습니다.
바둑이라는 소재, 그러나 결국은 '인생' 이야기
처음엔 ‘바둑이 얼마나 드라마틱할까?’ 하는 의문도 있었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점차 그 생각은 사라졌습니다. 오히려 바둑이었기 때문에, 이 이야기의 무게와 상징이 더 깊이 전달된 것 같습니다. 바둑의 한 수는 곧 선택, 그 선택이 쌓여 운명이 되듯, 우리는 일상 속에서 수많은 수를 두고 있죠.
이 영화는 바둑을 몰라도 충분히 감동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바둑의 규칙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긴 철학과 감정이라는 걸 알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승부의 진짜 의미를 묻다: 승리 vs 성장
30대인 제 입장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영화가 던지는 질문이었습니다.
“진정한 승부는 무엇인가?”
이 영화에서 승패는 단지 결과일 뿐, 그보다 중요한 것은 과정에서 얼마나 성장하고, 어떤 가치를 지켰는가였습니다.
특히 조훈현과 이창호의 갈등은 단순히 세대 차이나 기술 차이가 아니라,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 사이의 철학 충돌처럼 느껴졌습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많은 갈등들도 이와 닮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차분한 연출, 더 큰 울림을 만들어내다
이 영화의 연출 방식은 요즘 트렌드인 속도감보다는 절제와 여백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지만, 저는 오히려 이 점이 영화의 진정성을 살려주는 요소라고 느꼈습니다.
장면마다 삽입된 음악도 매우 섬세합니다. 과한 감정 유도 없이, 상황을 조용히 따라가듯 흐르는 OST는 극 중 인물의 감정과 관객의 몰입을 돕습니다. 특히 마지막 바둑 대국 장면에서는 음악과 침묵의 조화가 극적인 긴장감을 만들어냈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는 숨이 막힐 정도의 여운이 남았습니다.
마무리하며: 삶이라는 바둑판 위에서, 나의 다음 수는?
〈승부〉는 단순한 스포츠 영화도, 단순한 인물 전기도 아닙니다. 그것은 삶이라는 복잡한 바둑판에서 어떤 수를 둘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담은 영화입니다. 바둑을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 지금 어떤 선택 앞에서 고민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조용히 말을 건네는 작품입니다.
특히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많은 지금 시대의 입장에서 이 영화를 본다면, 분명 많은 장면이 가슴에 와닿을 거라 생각합니다. 흔들리는 자기 확신, 지나간 선택에 대한 후회,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인생의 고비들까지. 그 모든 고민에 영화가 담담히, 그러나 깊이 있게 응답해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