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조커>(Joker, 2019)는 표면적으로는 배트맨 시리즈에 등장하는 악당 조커의 기원을 다룬 작품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단순한 빌런 탄생 서사가 아닙니다.
호아킨 피닉스(Joaquin Phoenix)는 이 작품을 통해 한 인간이 광기에 이르는 과정을 섬세하고도 처절하게 그려냅니다.
이 글에서는 <조커>가 우리 사회와 인간 존재에 대해 던지는 깊은 질문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조커, 슬픔과 고통이 빚어낸 초상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 분)은 웃고 싶어 하지만, 울고 있는 남자입니다.
그는 사회의 가장자리에 서 있으며, 무시와 학대를 견디며 하루하루를 버텨냅니다.
희극인이 되기를 꿈꾸지만, 세상은 그를 끝내 받아주지 않습니다.
아서의 웃음은 진짜 웃음이 아닙니다.
그의 발작적 웃음은 신경학적 질환 때문이며, 사회에서는 그조차도 조롱의 대상이 됩니다.
영화는 이 설정을 통해, 아서가 겪는 고립과 소외를 더욱 극적으로 부각시킵니다.
(참고: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Pseudobulbar Affect" 관련 자료)
특히 아서가 어머니와 함께 머레이 프랭클린 쇼를 보며 상상 속에 빠지는 장면은 그의 내면을 절절히 보여줍니다.
그는 사랑받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를 폭력적으로 몰아냅니다.
영화는 아서를 '악'으로 단순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주변 환경과 사회적 무관심, 구조적 불평등의 희생양입니다.
<조커>는 "악은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라는 고전적 질문을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냅니다.
호아킨 피닉스, 아서 플렉 그 자체가 되다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는 이 작품의 심장입니다.
그는 단순히 캐릭터를 연기한 것이 아니라, 아서 플렉이라는 존재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23kg에 가까운 체중을 감량하고, 비틀린 몸짓과 끊임없는 불안감을 몸에 새겼습니다.
거울 앞에서 춤추는 장면은 피닉스가 자유롭게 창조한 즉흥적 퍼포먼스입니다.
(출처: IndieWire 인터뷰, Todd Phillips)
이 춤은 단순한 동작이 아니라, 아서가 사회적 존재로서의 자신을 내려놓고, 본능적 존재로 거듭나는 통과의례입니다.
살아남기 위해 웃어야 했던 남자가, 이제 웃음으로 세상에 저항하는 존재로 변하는 순간입니다.
피닉스는 아서의 고통과 분노, 희망과 절망을 눈빛 하나, 숨소리 하나에 담아냅니다.
그 결과, 관객은 아서를 악당으로 보기보다, 부서진 인간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이는 영화가 단순히 오락적 서사를 넘어,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성찰로 이어지게 한 결정적 요소입니다.
광대 사회의 민낯, 조커가 던진 거울
<조커>는 고담시라는 가상의 공간을 무대로 하지만, 그곳은 결코 비현실적이지 않습니다.
빈부격차는 극심하고, 복지는 붕괴했으며, 사람들은 서로를 혐오합니다.
아서가 처한 현실은 놀랍도록 오늘날의 현실 사회를 반영합니다.
경제적 불평등, 정신건강에 대한 무관심, 약자에 대한 조롱과 배제 등은 고담시뿐 아니라, 우리 주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특히 영화가 묘사하는 ‘무관심’은 치명적입니다.
사회는 약자에게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존재 자체를 귀찮아합니다.
아서가 지하철에서 폭행을 당하는 장면은 상징적입니다.
그를 방어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폭력은 결국 광기로 이어집니다.
이 장면은 "폭력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책임"임을 암시합니다.
결국 조커는 개인적 일탈이 아니라, 사회적 실패의 산물입니다.
영화는 이 지점을 집요하게 파고들며, 관객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정말 약자를 외면하지 않는가?"
"조커는 과연 우리와 무관한 존재인가?"
머레이 쇼, 조커의 탄생을 알린 무대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머레이 프랭클린 쇼에서 펼쳐집니다.
아서 플렉은 조커로 변신한 뒤 이 쇼에 출연합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복수극이 아니라,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머레이는 아서를 공개적으로 조롱하며 웃음거리로 삼았습니다.
아서가 가장 사랑했던 TV쇼에서조차 그는 조롱의 대상일 뿐이었습니다.
조커는 방송 중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을 저지릅니다.
이는 단순한 개인적 분노가 아닙니다.
자신을 조롱하고 배제했던 사회 전체를 향한 선언입니다.
이후 고담시 곳곳에서 일어나는 폭동은 조커라는 존재가 단순한 범죄자가 아니라, 억눌린 분노의 상징임을 보여줍니다.
이는 영화가 슈퍼히어로물의 문법을 넘어, 사회적 저항의 이야기를 품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조커, 인간성과 사회를 다시 묻다
<조커>는 단순히 광대가 된 남자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에게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비추는 거울이며,
사회가 얼마나 쉽게 한 사람을 부서뜨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입니다.
호아킨 피닉스는 놀라운 연기력으로 아서 플렉이라는 복합적인 인물을 탄생시켰고,
토드 필립스 감독은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허물며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성공적으로 녹여냈습니다.
이 영화는 불편함을 줍니다.
그러나 그 불편함은 필요합니다.
<조커>는 우리 모두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소외된 이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우리는 정말로 누군가의 절망을 외면하지 않고 있는가?"
"조커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 안에 존재할 수도 있는 존재가 아닐까?"
영화가 끝난 후에도, 이 질문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조커>는 단순한 영화가 아니라, 하나의 시대적 선언이었음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참고 자료
- IndieWire, "Todd Phillips Explains Joker's Dance Scene and Joaquin Phoenix's Process" (2019)
- Variety, "Joaquin Phoenix Lost 52 Pounds for ‘Joker,’ Says Transformation Gave Him ‘Disordered Eating’" (2019)
-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Pseudobulbar Affect"
- 영화 <조커>(2019) 공식 자료 및 감독, 배우 인터뷰